가령 너무도 수줍음을 타서 아주 괴로울 때가 있어요. 그놈의 수줍음은 어떻게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사실 지나치게 예민한 내 감수성이 제일 문제예요. 그 때문에 아주 멍청이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니까요. 예를 들어 볼게요. 어느 여름 남프랑스에 있는 내 집에서 말벌 한마리를 목격했섭니다. 말벌이라면 특히 질색인데, 이 녀석은 아주 먼곳에서 날아와 피곤했는지, 빗물받이 홈통 가장자리에 앉아 잠깐 쉬더군요. 그더더니 어둠에 잠긴 컴컴한 부엌으로 들어가 냄비에 담겨져 있던 물을 마셨어요. 냄비엔 언제나 물이 담겨 있죠. 물을 마신 녀석은 이내 날아가서 다시금 처음에 앉았던 홈통 가장자리에 내려앉았습니다. 조금 후에 나는 녀석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디로 가는지야 나도 모르죠. 어쨌거나 처음보다 무거운 몸짓으로 날아갔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거나 녀석은 몸에 물을 실었으니 나아갈 때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그 말벌은 대개 정해진 시간에 날아왔습니다. 어디에서 오는지 알수 없었지만 하여간 난 녀석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작은 부엌의 홈통 가장자리에 내려앉았죠. 해가 낮게 드리우는 그 시각쯤이면 부엌은 아주 어두웠습니다. 그ㄹ서 냄비를 꺼내 그 안에 커피를 데우고 있었고, 커피는 곧 끓을 정도로 뜨거워졌어요. 아시다시피 커피는 꺼멓죠. 그런데 커피가 아닌 물이 담겨 있어도 꺼매 보이죠. 부엌이 어두웠으니까요. 녀석은 부엌으로 날아와 붕붕거리며 꺼먼 물로 향했습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그 커피로요. <바작바작>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난 아연실색해서 죽은 녀석을 꺼낸 다음 부엌에 있던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녀석의 두 날개를 펴주려고 애를 썼는데, 웬걸요, 이미 죽었더라고요. 즉사한 거였죠.
절망감에 사로잡힌 난 별짓을 다 했어요. 녀석의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기도 하고, 녀석에게 인공호흡 비슷한 걸 하기도 했죠. 꽤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녀석이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든요. 늘 오던 말불일 뿐이었어요. 난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요. 말벌이라면 질색이었으니까요. 말벌이 아니라 그냥 꿀벌이었다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지도 모르죠. 그런데 꿀벌이 아니라 말벌이었어요. 녀석은 끈질긴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몇 초 전만 하더라도 모든 건 다 제대로 돌아갔는데,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거죠? 난 녀석에게 물릴 위험까지 무릅써가며 녀석의 발이며 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고요. 소용없었어요. 정말로 녀석에게 인공호흡 비슷한 것도 해 주었다니까요. 이래봐야 소용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제법 오래도록 해 주었지요.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난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어요.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녀석의 친구들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왜 하필이면 그 좁고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커피를 끓여 마실 생각을 했담, 하고 후회를 했죠.
불쌍한 말벌은 부엌에서 펄펄 끓고 있어서 마시면 맛도 없을 커피와 검은 빛깔 물을 구분하지 못했어요. 내가 녀석을 죽인거죠.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을 그칠 수 없었어요. 그래요, 이 말벌 이야기는 나에게 아주 끔찍해요. <내가 죽음과 함께 한다. 죽음이 나를 통해 말벌을 공격했다. 따라서 녀석의 죽음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라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내 몸속의 눈물이란 눈물은 모조리 빠져나가도록 울었습니다. 다른 말벌들이 <어라, 오늘은 그애가 늦네. 늪는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면서 걱정을 할 거라고 상상했죠. 하지만 난 녀석이 결코 돌아가지 못하리라,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황소처럼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다음 날, 그러니까 그 운명적인 사건이 있고 난 다음 날 수영장에서 아주 예쁜 나비가 익사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아주 더운 날이었죠. 나는 얼른 달려갔습니다. 차가운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냉수 쇼크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하고 잠시 두려웠지만, 그대도 무사히 그 나비를 잡아서 수영장 가장자리에 놓아주는데 성공했죠. 녀석을 구한거죠. 그런데 그 순간 뒤를 돌아보면서, 달려오는 내 발에 밟혀 개미 여남은 마리와 또 다른 나비가 압사당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빨리 걷고 뛰느라 그 녀석들에게는 주의를 하지 못한거죠. 그렇게 나도 모르게 많은 벌레들을 죽이고 나자, 또다시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게다가 그 멍청한 나비 녀석, 내가 보기에 꼭 죽을 것만 같고 다시는 날개짓을 하지 못 할 것 같았던 그 녀석은 익사 위험에서 벗어나 날개가 보송보송해지자 또다시 수영장물을 향해 날아가는게 아니겠습니까. 그 꼴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그냥 녀석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죠. 그런데 이건 정말이에요. 내 발에 깔려서 그때까지도 버둥거리던 개미들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니까요. 아, 나비도 한 마리 있었지요. 정말이지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웠죠. 스스로에게 정말로 멍청한 놈이라고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소용없었죠. 절망감이 사라지지 않는 걸 어떡합니까. 내가 느끼는슬픔은 엄청났어요.(쌍뻬의 어린시절. pp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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